여행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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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우

2022.02.09
조회수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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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북 포구

해신사가 있는 돈지성창에서 보이는 방파제는 두 곳으로 뻗어 있어 곡식을 타작하는 농기구인 도리깨와 비슷해 보인다. 같은 방향으로 길고 짧게 방파제로 굵고 짧은 방파제는 아주 오래전에 만들어졌고, 긴 방파제는 2종 항구 개발로 최근에 축조되었다. 새로운 방파제에 등대가 세워져 있다. 등대를 쳐다보자 오래된 친구를 만난 듯이 정겨웠다.

 

해신사 입구입니다. 화북진성 돌담 사진입니다.

화북동은 어촌 마을로 남쪽에는 백록담이 보이고, 북쪽에는 자리왓, 우럭밭, 볼락밭, 갈치왓 등에 맬이 들고, 동쪽에는 원당봉, 서쪽에는 별도봉이 보인다. 방파제 위에 있는 화북 등대는 울퉁불퉁한 갯바위 넘어 연대와 마주하며 바다를 지키는 것 같다.

 

화북포구 등대 사진입니다. 화북포구 사진입니다. 하늘이 맑습니다.

등대는 운명이나 숙명이라 할지라도 세워지는 순간 힘이 들어도 한길만 걷게 된다. 근해에서 들어오는 배의 길잡이가 되어 주는 등대는 갯바위와 암초를 경계하는 것보다는 실과 바늘 같은 존재로 서로 인사리 삼으며 보듬어준다. 일제 만행과 4.3과 같은 민족의 아픈 역사를 겪으면서도 좌절과 슬픔을 하소연할 겨를이 없이 자신의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며 등대는 지금까지 서 있다.

거친 비바람과 풍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믿음직한 등대는 외적 침입에 창검 번득이는 민관군 함성이 선창을 싸며 외쳤던 성인들의 외침이 파도 소리처럼 늠름해 보인다. 화북 포구 등대는 세월이 흘러도 도민을 위한 유산으로 남아 있다.

 

화북포구 정박한 배 사진입니다. 화북포구에서 바라본 마을입니다.

등대가 서 있는 방파제 앞으로 새파랗고 하얀 파도는 어선과 보트가 나들면서 물거품을 일으키며 타원형을 그으며 들어오는 모습이 문명의 발달을 느꼈다.

어린 시절의 숨결이 느껴지게 하는 것도 등대다. 온종일 바닷가에서 목욕하다가 몸이 덜덜 떨면서 입술이 세 까맣게 시리면 따뜻한 등대에 기대여 몸을 말리기도 하였다. 등대 옆에서 몸이 따뜻해지면 또다시 등대 밑으로 내려가 다이빙과 헤엄을 치면서 해산물과 한발만 한 가는 대나무로 참대로 낚았다.

노 젓는 작은 목선을 타고 재미 삼아 동네 사람과 조업을 나갔다가 고기를 잡고 들어오면서 등대가 멀리서 보이기 시작하면 집이 가까워지는 것을 알았다. 지금은 나침판 같은 장치가 배에 내장되었지만, 예전에는 항해하면서 등대 위치를 기준 삼아 항구로 들어왔다.

 

화북포구에서 바라본 삼양 마을입니다. 현위치 안내판입니다. 현재 위치는 환해장성 가기 전입니다.

날씨와 조류의 흐름에 파도가 요동쳐도 등대는 끄덕하지 않는다. 에메랄드빛처럼 반작이는 물결이 열대성 이상기후로 예고 없이 파도가 높아지기 시작하면 주낙 같은 조업 중 위험이 있으면 등대를 보면서 들어오기도 했다.

등대는 뱃길과 암초가 있다고 위험을 알리는 역할보다, 조업을 마치고 항구로 들어오면서 등대가 봉오리처럼 우뚝하게 보이면 위로와 친근감이 든다고 하였다.

 

 

1) 옛날에 마당에 멍석을 펴놓아 조 콩 메밀 등을 두드려 껍질을 벗기는 농기구

2) 많다는 뜻.

3) 화북포구 중심으로 자연마을을 형성한 전형적인 해변 마을이다. 또한, 1600년까지 화북을 이별할 별과 칼 도를 써서 별도(別刀)라 부렸다.

 

 

 

 

▽해신사 주소

제주시 진북길 13-1

 

▽화북포구 공중화장실 주소

제주시 화북일동 4269-11

 


*위 글은 2021년 9월에 작성한 것입니다. 

이후 관광지 정보가 변경되었을 수 있으니 여행 전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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