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회원아이콘

정재익

2019.08.05
조회수 46
0
잊혀지지 않는 4.3의 기억, 아 잠들지 않는 남도 한라산이여 !

상호 : 제주4.3평화공원기념관

주소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명림로 430

 

“잊혀지지 않는 4.3의 기억, 아 잠들지 않는 남도 한라산이여! ”

안치환의 노래 가사처럼 ‘지금도 죽음에 고통의 흔적, 영혼들이 잠들고 않고 살아 있는 제주도민의 가장 아픈 역사’ 제주 4.3 사건으로 억울하게 희생되어 꿈도 희망도 잃은 사람들을 추모 하기 위해 제주 4.3 평화 공원을 찾았습니다.

제주 4.3 사건’ 이란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경찰.서청의 탑압에 대한 저항과 단독선거.단독정부 반대를 기치로 1948년 4월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무장봉기한 이래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다.”

4.3평화공원기념관 전경 입니다.jpg4.3평화공원기념관 안내글 입니다.jpg4.3평화공원기념관 내부 모습 입니다.jpg

.제주 4.3 평화 공원은 제주 4.3 평화 기념관 중심으로 주변에 위령탑, 각명비,추모광장,위령제단,행방불명인 표석,봉안관,비설 등이 있어 억울하게 희생된 고인들을 추모하는 공원으로 되어 있습니다.
저는 해설사 예약을 3시에 했습니다. 장애인 콜택시 예상 보다 1시간 빨리와서 먼저 제주 4.3평화 공원 주변을 먼저 돌아 보기로 했습니다. 기념관에서 왼쪽에 있는 경사로를 올라가면 위령탑 보입니다.
첫 번째로 간 곳 위령탑은 제주의 역동성과 경건함을 가진 제주도의 분화구 형태이며, 물 중앙 조형물은 희생자의 넋의 상징인 인간의형태를 상징하고, 금속원형 고리는 영원한 평화를 기원한다고 합니다.
위령탑 중심으로 동그렇게 원 모양으로 제주 4.3 희생자 각명비 세워져 있습니다.
희생자들의 한과 넋을 달래기 위해서 4.3희생자 14,233 명의 성명,성별,당시 연령, 사망을 새겨 2009년 4월 3일에 설치하였습니다.
위령탑에서 다시 그 경사로를 계속 올라가면 위령제단 나타납니다.
추념광장을 지나서 정면으로 보이는 거대하고 웅장한 4.3희생자의 추모공간인 위령제탑 보이고 여기에는 14,120위가 위패가 봉안이 되어있습니다.
위령제단에서 오른쪽 밑으로 내려 가다 보면 제주 4.3 행방불명 희생자 개인별 표석 4천 명의 표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4.3평화공원기념관 각명비 모습 입니다.jpg4.3평화공원기념관 외부 비석 입니다.jpg4.3평화공원기념관 위령제탑 입니다.jpg4.3평화공원기념관 봉안관 입니다.jpg4.3평화공원기념관 기념조각 비설 입니다.jpg4.3평화공원기념관 봉안관 입니다 (2).jpg

제주 4.3 행방불명 희생자 개인별 표석 밑으로 내려 가다 보면 봉안관 보입니다.
발굴 유해 400구 봉안 된 곳
봉안관에서 밑으로 또 내려가면 보면 타원형 미로 처럼 보이는 돌담이 보이는데 그 안으로 계속 들어가면 보면 쫒겨난 두 살 난 젖먹이 딸을 등에 업은 채 피신 도중 총에 맞아 희생된 당시 봉개동 주민 변병생 모녀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기념조각이 ‘비설’ 보입니다.
저는 제주 4.3 평화 공원 주변에 있는 비설 조각을 보며서 ‘지금도 제주 4.3 아픔 영혼이들이  이땅 위에서 울고 있구나!’ 생각하고 저의 아픈 가슴을 달랩니다.  
‘이 제주 4.3 평화공원 전체가 4.3 의 억울하게 희생자의 추모 하는곳 이구나!’
다시 느끼며 3시가 가까워져 제주 4.3 평화 기념관으로 해설사의 설명을 듣기 위
해 들어 갔습니다
들어가는 곳 입구에서 해설사 말에 의하면” 4.3 때 살기 위해 이런 용암동굴에 숨어도 희생된 사람도 많았습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역사의 동굴을 지나 1관  백비가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백비 위 천장
해설사가 백비에 대해서 이야기 해주셨습니다.
제주 4.3 민중 항쟁이나 제주 4.3 민주화 운동 이란 의미 있는 이름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70년 지나 지금도 제주 4.3 사건이 이름 없다니 억울하게 희생된 고인들에게 미안하고 죄송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천장에서 빛이 백비를 비추는 모습이 그 비가 누워 있는 모습에서 바로 스스로 세워지고 바로 이름이 새겨져서 억울하게 희생된 영혼들을 달래는 것 처럼 보였습니다.

4.3평화공원기념관 안내 도면 입니다.jpg4.3평화공원기념관 전시실 내부 입니다.jpg4.3평화공원기념관 전시실 내부 입니다 (2).jpg

1층 상설전시실 : 4.3의 원인,전개,결과,진상규명과정을 전시
일제로부터 불안한 해방으로 이야기 시작되고 2관 흔들리는 섬 관에는 여전히 일제고문경찰이 해방조국에 경찰이 되어있고 공출을 독려했던 총독부 직원은 그대로 면직원이 되는 상황에서..
3관 바람 타는섬 4.3 사건의 도화선 민간인 6명이 죽고 8명이 부상 당하는 3.1 발포 사건이 발발 했습니다.
그로인해 전 도민이 항의 총파업에 들어가게 되고...
그렇게 해서 미군정이 경찰 직함을 준 서북청년회가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서북청년회의 폭력은 법 위에서 군림하는 것 같았습니다.남쪽만의 단독선거는 사태를 더욱 불안한 쪽으로 몰고 갔습니다.
1948년4월3일 제주 도당 남로당 350명의 의해 무장 봉기가 오르고 4.28 평화 협상 깨지고 우익청년단이 조작한 오라리 방화사건이 생깁니다.
4관 불타는 섬에는 초토화 작전 제주 도민 2만5천에서 3만 명, 도민의 1/9의 희생과 학살이 1948년 10월 17일 시작됩니다.이날 제주지역 토벌 사령관인 송요찬은 “해안에서 5km 이상 지역은 적성구역으로 간주하고 그곳에 출입하는 사람들은 무조건 사살하겠다.”라는 무시무시한 포고령을 내렸습니다.법적 절차 없이 무조건 제주도 사람을 죽이겠다는 것입니다다랑쉬 특별전시관
1948년 12월 18일 11명(50대 여성과 아홉 살 난 어린이 포함)의 민간인이 토벌대에 의해 질식사한 동굴 현장을 발굴 당시 그대로 재현하였습니다5관 흐르는 평화의 섬 황폐 해지고 사라진 마을 , 4.3의 후유증 연좌제 피해 사례가 나옵니다.
무참히 부서진 백조일손비
“서로 다른 132분의 조상들이 한 날, 한 시, 한 곳에서 죽어 뼈가 엉기어 하나가 되었으니 그 후손들은 이제 모두 한 자손” 이라는 4.19 혁명 이후 희생자 유족들이 세운 백조일손비 이듬해 5.16 군사정변이 일어난 직후 경찰에 의해 조각 조각 깨뜨려졌습니다.
‘제주 4.3은 평화 통일 인권의 상징입니다.’
편의 시설
Café 퐁낭 공간도 넓고 가격도 비싸지 않고 누구나 담소를 나누면서 차와 커피를 마실 수 있고 제주 4.3사건 관한 책이 전시가 잘 되어있고 또한 살 수가 있어 일반 성인과 학생 그리고 어린이 한테는 아픔 제주 역사 배우는 좋은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댓글 0